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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에 대해 말을 했다가는 자칫 ‘쪼잔한 남자’로 몰린다. 남자의 애환을 재미있게 풀어내 인기를 얻는 개그콘서트 ‘남보원’의 한 장면.
그렇다면 한국 남자들은 왜 당당하게 더치페이를 요구하지 못하는가. 가장 흔한 답변은 우리 고유의 유교적, 가부장적 문화 때문이다. 여대생 문모(26) 씨는 “남자는 바깥일을, 여자는 안살림을 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문화가 잔존하기 때문에 남녀 모두 남자가 더 많은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경제학적인 투자와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자들이 자기 투자에 돈을 쓰는 만큼, 데이트 비용만으로 여자들이 돈을 안 쓴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 한다. 여자들이 자기 외모를 가꾸고 투자하는 만큼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한다.”(최한빛, ‘미녀들의 수다’ 중에서)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개념은 바로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이란 무엇인가를 선택하기 위해 반드시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할 때 그 포기한 것의 가치다. 위의 언급에 비춰볼 때, 여자들의 기회비용은 데이트 비용이다. 데이트 비용과 자기를 가꾸는 비용 중 후자를 택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데이트 비용은 남자에게 양보(?)한 것이다.
반면, 남자들의 기회비용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가꿀 수 있는 자기 투자 비용이다. 대학생 커플 남학생의 경우 한 달 용돈에서 식비와 교통비, 친구들과의 술자리 등 생활비용을 빼면 나머지는 거의 데이트 비용에 들어간다. 회사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험료, 펀드 및 주식 납입금, 자동차 할부금, 부모님 용돈, 각종 경조사비 등을 제하고 나면 결국 데이트 비용만 남는다.
그러나 데이트 비용을 남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기보다 여자들이 분담할 때, 비용 절감은 물론 연애의 질도 높아진다. 캠퍼스 커플인 변종국(26) 씨와 성지혜(26) 씨는 커플 통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달에 대략 쓰는 데이트 비용을 파악하고 월 초에 그만큼을 통장에 넣는다. 주로 변씨가 6대 4의 비율로 더 많이 입금한다. 그리고 데이트를 하다 비용이 초과하면 성씨가 부족한 부분을 메운다. 변씨는 “물론 나 혼자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어도 지금 여자친구를 만났겠지만, 자꾸 옆에서 도와주고 분담하려는 모습에 더욱 신뢰가 가고 믿음이 생긴다”고 밝혔다.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독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박모(25) 씨는 연수 시절 독일 여성을 사귀면서 같이 여행을 다녔다. 여행을 준비할 때 박씨는 교통편, 숙박편 등을 모두 예약해두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여자친구가 매우 불쾌해했다. 자기를 얼마나 불쌍하게 봤으면 모든 비용을 한마디 상의 없이 혼자 낼 수 있느냐며 화를 냈던 것.
최근 사회 곳곳에서 여풍이 불고 있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 고시 합격자 수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을 웃돈다. 이전에는 어렵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기피하던 전투기 조종이나 건설 현장의 크레인 작업에도 여성들이 진출할 만큼 ‘금녀의 구역’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계산에서만큼은 금녀의 구역이 존재한다. 계산할 때가 되면 화장을 고치거나 자리를 피하는 모습은 오늘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알파걸’의 모습이 아니다. 같은 유교문화권인 일본에서 10엔 단위까지 정확히 계산하는 모습과 사뭇 다를뿐더러 ‘레이디 퍼스트’가 일상화된 서구에서도 데이트 비용은 남녀가 거의 동등하게 지불하고 있음을 볼 때 상당히 이질적이다. 진정한 남녀평등은 데이트 비용의 더치페이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