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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등록일 조회수
179 간택-보쌈-미팅-소개팅, 중매의 역사! 2014-05-17 5403

조선시대에 왕이나 세자가 왕비 혹은 세자빈을 맞이하는 제도로 ‘간택’이라는 것이 있었다. 간택은 일종의 경연으로 수많은 양반가의 여식을 모아놓고 심사를 거쳐 적합한 인물을 고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간택은 세종 이후 정착된 제도다. 건국초기에는 간택이 아닌 중매를 통해 왕비와 세자빈이 결정됐다.

중매, 결혼이 이루어지도록 제 3자가 남녀의 만남을 소개하는 이 문화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 어쩌면 인류가 탄생한 그 시점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신시대 양반가에서도 중매는 성혼으로 가는 매우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독특한 점이라면 당사자들은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혼인을 하는 날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결혼 자체를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사실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 ‘보쌈’이라는 기이한 형태의 중매문화도 이었다. 보쌈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귀한 집 딸이 둘 이상의 남편을 섬겨야 할 사주팔자인 경우 밤에 외간 남자를 보에 싸서 잡아다가 딸과 재우고 죽이면 그 딸은 과부가 될 액운을 면했다고 여겨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혼기를 놓친 총각이 과부를 밤에 몰래 보에 싸서 데려와 부인으로 삼는 경우였는데 법적으로 재혼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관청에서는 이를 알고도 묵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다만, 보쌈으로 맺어진 총각과 과부는 평생을 조용히 숨어 살아야 했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면서도 중매의 역사는 계속 진행됐다. 흔히 ‘마담뚜’라고 하는 중매쟁이가 상류사회의 결혼 적령기에 있는 남녀의 만남을 주선했다.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결혼의 중심이 개인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인식이 상류사회 전반에 남아있던 탓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중매’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바로 ‘미팅’의 등장이다.

 

‘미팅’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때는 60년대 중반부터다. 대학의 학기가 시작되는 봄철이 되면 대학새내기들에게 미팅이란 캠퍼스의 낭만이자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그 시절 미팅은 주로 대학대 대학, 과대 과로 이루어졌다. 각 남녀 그룹의 대표자는 주로 해당학과의 과대표가 맡았다. 미팅을 얼마나 많이 잡아오는가는 과대표가 갖춰야 할 능력 중 하나라고 여겨질 정도로 미팅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80년대에 들어서는 소개팅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정식 교제까지 이뤄지기가 확률상 매우 낮았던 미팅보다 주선자의 소개로 단 둘이 만나는 소개팅이 커플이 되기 더 쉽다는 장점을 무기로 빠르게 확산됐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중매를 서게 된 시기도 있다. PC통신이 등장한 90년대에는 이를 통한 만남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PC통신사 천리안의 싱글탈출이나 나우누리의 나우콤팔 등은 만남을 주선하는 일종의 중매서비스를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에서 밤새도록 채팅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이것이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져 결혼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이 시기를 거쳐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성혼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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