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주변에는 10년 연애하고 결혼해서 3개월도 못 살고 헤어지는 커플들이 있다. ‘남자는 화성, 여자는 금성’ 출신인지라 근본적으로 뇌구조가 다르고, 성향과 가치관, 삶의 자세, 습성 등이 다른데 기인한다. 또 한편으로는 결혼 전에 상대를 파악하는데 소홀한 측면도 있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엄연한 한계가 있다. 혼전 동거가 현실적으로 제한적이고, 또 교제를 오래 한다 해도 늘 비슷한 대화,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다보니 별 진전이 없다.

교제를 하면서 시간이 흐르다보면 정이 들고, 그러다 보면 결혼 얘기가 나온다. 결국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또 결혼생활에 대한 아무런 청사진도 없이 공동생활에 들어간다. 당연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희한한 일들이 무더기로 발생하게 된다. 이전 세대 같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냥 살겠지만 요즘 세대는 어림도 없다. 그 책임은 다른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결혼 당사자에게 있다. 

이와 같은 낭패를 막기 위해서는 결혼 전에 당사자끼리, 그리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결혼 청사진, 즉 협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드시 당사자 두 명이 함께 참여하여 예상되는 이슈 하나하나에 대해 세세하게 협의하고 조정하여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결혼관을 확인함은 물론 결혼과 관련된 주요 사안들에 대해 서로 약속하고 다짐하며, 검증할 수 있다.

협약서에는 1) 결혼 당사자 및 가족의 주요 프로필, 재산, 건강 등에 대한 사실 확인(예 : 내가 생각하는 당신은 이런이런 사람이다. 여기에 허위 사실이 없어야 한다). 2) 결혼생활에 대한 일반적 지침(예 : 우리는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배려한다 등). 3) 부부 각자의 주요 역할(예 : 남편의 주요 역할, 아내의 주요 역할, 주요 과업에 대한 역할 분담). 4) 부부로서 상호 준수할 사항. 필수 이행 사항과 절대 피할 사항 등(예 : 남편은 가사에 동참해야 한다. 의견충돌이 있을 때 폭언이나 폭행, 막말 등을 삼가한다 등). 5) 재산 관리 방법(예 : 부부 수입의 관리 방법, 집의 소유권, 일상 생활비의 충당 등). 6) 예상되는 주요 이슈에 대한 합의(예 : 출산 자녀 수, 종교 등). 7) 협약서 내용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처리 방향(법적 혼인 신고, 임신 등의 시기 결정 등)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협약서는 평생을 예측하고 작성할 수 없으므로 결혼 후 3년 혹은 5년 등과 같이 일정 기간마다 갱신토록 한다. 한 회기가 끝날 때는 양측의 협약서 이행여부를 점검하고, 다음 회기에 명심할 사항과 추가·보완될 항목을 반영하여 작성한다. 이전 회기 동안 특정 일방 혹은 쌍방이 협약서 내용 중 일부 혹은 대부분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면 거기에 대한 조치사항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협약서의 작성 및 이행, 점검 등을 통해 1) 결혼 전에 서로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2) 상대의 결혼관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는다. 협의·조정 단계에서 이견이 노출되면 최대한 절충하되 끝까지 좁혀지지 않을 때는 결혼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결혼관에 심각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3) 불확실성이 많은 결혼을 앞두고 미리 일종의 나침반을 마련해두는 격이 된다. 4) 결혼 후 부부생활의 지침서 역할을 하게 되어 서로 위반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게 된다. 5) 부부 중 일방 혹은 쌍방이 협약서 내용을 심각하게 위반할 경우 사후 조치가 용이하다. 

협약서가 부부의 생활을 구속한다기보다는 서로 자유롭게 생활하는 가운데 부부라는 공동체로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상 '결혼을 안 한다고? 난센스!'(2020년 출간, 손동규 저)에서 발췌